학교시설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빈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공공건축물이다. 그러나 그 일상성 속에는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고스란히 담긴다. 학생의 건강과 학습권을 지키는 실내환경, 교육공동체가 안전하게 사용하는 공간의 품질, 그리고 탄소중립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공 인프라로서의 책임까지. 학교시설은 단순한 시설을 넘어 ‘미래를 만드는 플랫폼’에 가깝다.
최근 녹색건축인증기준 개정(안) 논의는 단순한 항목 조정 수준을 넘어, 평가 철학 자체가 성과 중심(Performance-based)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제는 무엇을 설치했는가보다, 실제로 얼마나 절감되고 유지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특히 공공건축 중에서도 학교는 규모와 파급효과가 큰 영역이기에, 개정된 기준은 학교시설의 기획·설계·시공·운영 전반에 큰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과정에 논의할 내용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시설 녹색건축 확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온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둘째, 녹색건축인증기준 개정(안) 방향을 정리하고자 한다. 셋째, 기준 개정에 따른 학교시설 변화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넷째, 창호·환기·BEMS·태양광 등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계가 준비해야 할 현실적 대응을 제안하고자 한다.
1.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의 역할
녹색건축인증제도가 지난 23여 년간 운영되어오면서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이하 KEGE)은 학교시설의 녹색건축 확산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KEGE는 2006년부터 녹색건축인증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교육시설의 인증 체계를 제도적으로 안정화시키고, 학교 현장의 인증 참여를 본격적으로 견인했다. 무엇보다 학교는 민간 건축물과 달리 발주 구조가 공공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교육청·지자체의 예산 및 조달 체계에 따라 사업이 추진된다. 이 구조 안에서 ‘제도에 대한 이해’와 ‘행정적 추진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인증 확대는 어렵다. 이에 KEGE에서는 학교시설 특성을 반영해 인증 절차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기술 지원을 제공하였다. 이로 인해 학교시설의 녹색건축인증(그 당시 친환경건축인증) 건수는 2006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인증 ‘수’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인증이 홍보성, 또는 일부 선도사업 중심으로 제한되었다면, 점차 교육청의 시설사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인증이 곧 기본 요건”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교육시설이 공공건축 중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친환경 설계·시공의 표준을 형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었다. KEGE는 2000년대 초 학교시설에 녹색 및 에너지 관련 연구를 진행하여 보급하여왔다. 2001년 생태학교 조성, 에너지 절약학교연구, 2003년 대체에너지를 이용한 냉난방시설 모델개발 연구 등 그동안 축적해 온 결과가 작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화 평가 경험, 기술적 데이터가 정책과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오늘날 학교시설은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목표, 학습환경의 질 향상이라는 다중 과제를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렇기에 인증제도는 단순히 평가 체계를 넘어 학교시설의 기획·설계·조달·운영 전 단계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의 성격을 가진다. KEGE가 수행해온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학교시설의 현실을 이해하는 인증기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시설의 친환경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구조적 토대가 된다.
2. 녹색건축인증기준 개정(안) 방향
최근 녹색건축인증기준은 단순 보완을 넘어 “대변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제 인증은 과거처럼 ‘일부 항목을 충족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물의 성능과 결과를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몇 가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첫째, 탄소중립 목표와의 연계 강화가 핵심이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감축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고, 공공시설인 학교는 그 목표 달성의 전면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인증기준은 에너지 절감의 “의지”보다는 “성과”, 즉 실제 에너지 사용량과 절감 가능성, 고효율 설비 적용의 체계성, 신재생에너지 활용의 적정성 등을 더욱 정교하게 평가하려는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실내환경과 사용자 중심 평가의 강화가 나타난다. 교육시설에서 실내환경은 단순한 ‘쾌적함’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집중도와 건강권의 문제로 직결된다. 환기, 공기질, 열환경, 빛환경, 소음환경 등은 학교 특성상 체감도가 매우 크며, 특히 감염병 경험 이후에는 환기성능과 공기질의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됐다. 따라서 인증기준은 설비의 존재 여부뿐 아니라, 성능 검증 및 운영 적합성을 점차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셋째, 유지관리 및 운영성능의 비중 확대가 예상된다. 공공건축은 설계·시공 단계에서 친환경을 구현하더라도, 운영 단계에서 실제 성능이 유지되지 않으면 목표 달성이 어렵다. 학교시설 역시 준공 이후 담당 인력, 운영 예산, 장비 노후화 등의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인증기준은 운영 단계의 모니터링, 에너지관리체계, 유지관리 용이성 등 “지속가능한 관리”를 평가하는 항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넷째, 현장 적용성의 재정렬이 중요해진다. 인증은 단순히 엄격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현장에서 구현 가능한 기술과 비용 구조 속에서 공공건축물의 전반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따라서 학교시설의 지역별 여건(도심지·농어촌), 급식·체육·특수학급 등 기능적 특성, 예산 범위 등을 반영한 현실적 기준 설계가 요구된다. 이는 향후 개정기준의 신뢰도를 좌우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3. 녹색건축인증기준 개정(안)에 따른 학교시설의 변화 방향
녹색건축인증기준의 개정은 학교시설에 “친환경 요소를 추가하는 변화”가 아니라,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는 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학교시설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첫째, 패시브 중심 설계의 기본화이다. 과거에는 고효율 설비나 신재생에너지를 우선 도입하는 방식이 많았다면, 이제는 외피 성능과 일사·차양·자연채광·기밀·열교 저감 등 기본 설계가 에너지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이 더욱 강조된다. 이는 학교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건축·기계·전기·조경이 함께 성능을 설계하는 통합적 접근을 요구한다.
둘째, ZEB(제로에너지건축물) 연계 강화가 불가피하다. 학교는 공공건축물로서 제도적 의무화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인증기준 또한 제로에너지 목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자립률을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설비 시스템의 효율화, 신재생 적용의 최적화, 에너지관리체계 구축 등 “성능 기반 설계”의 정착을 의미한다.
셋째, 학습환경의 질 중심 공간계획이 강화된다. 예를 들어 교실 환기와 공기질 확보를 위한 급배기 시스템의 합리적 설계, 열쾌적성 확보를 위한 창호·차양 계획, 자연채광을 고려한 교실 깊이와 복도 계획 등은 이제 인증을 위한 항목이 아니라 “학교의 기본 품질”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학생들의 집중도와 피로도를 줄이는 환경 설계는 학습 성과와 직결되며,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 강조될 것이다.
넷째, 그린리모델링 및 기존학교 개선의 확대이다. 학교시설은 신축뿐 아니라 기존학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개정기준은 신축 중심 평가에 머물지 않고, 리모델링과 성능개선 사업에서도 실질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창호·단열 보강, 고효율 냉난방, 조명 LED 교체를 넘어, 운영성과 검증과 관리체계 구축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학교 개선이 추진될 것이다.
다섯째, 기후적응과 안전의 통합이다. 폭염, 한파, 집중호우 등 기후위기의 영향은 학교 운영에 직접적 위험 요소가 된다. 앞으로는 단순 에너지 절감뿐 아니라, 재난 대응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갖춘 학교가 요구될 것이다. 즉, 친환경과 안전이 분리된 기준이 아니라 통합된 성능 지표로 설계·평가되는 시대가 열린다.
4. 녹색건축인증기준 개정(안)에 따른 산업계 준비 방향
학교시설의 변화는 곧 산업계의 변화 요구로 연결된다. 인증기준이 강화되고 성능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산업계는 단순 납품 중심에서 벗어나 “성과를 책임지는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성능 검증형 자재·설비 시장의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 단열재, 창호, 차양, 환기장치, 공조기, 냉난방 설비, 조명, BEMS 등은 더 이상 스펙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설계-시공-운영 단계에서 요구 성능을 구현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성능 인증서, 시험성적서, 운영데이터 기반의 신뢰성 확보가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둘째, 통합 설계·시공 협업 체계(Integrated Delivery)의 정착이 중요하다. 특히 학교는 공정이 제한적이고 공사 기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시공 단계에서 설계를 변경하는 방식으로는 성능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설계 초기부터 산업계가 기술 정보를 제공하고, 시뮬레이션 기반으로 최적안을 제시하는 협업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하도급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공공학교 사업의 효율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이 된다.
셋째, 운영·유지관리 시장으로의 확장이 필수다. 학교시설은 준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고효율 설비가 도입되더라도 운영자 역량이 부족하면 성능은 빠르게 저하된다. 산업계는 단순 시공 이후 A/S 제공을 넘어, 유지관리 편의성과 운영 매뉴얼, 원격 모니터링, 성능 점검 서비스 등 운영 지원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예산 현실에 대한 솔루션 제시가 필요하다. 학교시설은 예산 제약이 강한 영역이며, 기준 강화가 곧바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는 고가 장비 중심의 접근보다는, 생애주기비용(LCC) 관점에서 비용 대비 성능을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제안해야 한다. 즉 “비싸지만 좋은 기술”이 아니라 “학교가 지속적으로 운영 가능한 기술”이 경쟁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교육시설 특화 기술의 개발과 표준화가 요구된다. 학교는 일반 업무시설이나 공동주택과 달리 이용자 밀도, 사용 패턴, 수업 시간 운영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환기·냉난방 부하 특성이 명확히 다르고, 체육관·급식실·특수교실 등 공간의 기능이 다양하다. 산업계는 이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기술 개발과 표준 모델 구축을 통해 시장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5. 맺음말
녹색건축인증기준의 개정은 학교시설에 있어 “추가 과제”가 아니라 “새로운 표준”의 출현을 의미한다. 과거 학교가 인증을 통해 친환경을 ‘도입’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인증을 통해 학교의 성능과 운영 품질을 ‘완성’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KEGE는 2006년부터 인증기관으로서 학교시설의 친환경 확산을 견인하며, 제도와 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왔다.
앞으로 학교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공공건축의 모범이자, 학생의 건강과 학습권을 지키는 공간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인증기준, 발주기관, 설계자, 시공자, 산업계가 함께 준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녹색건축인증기준의 대변혁은, 학교시설을 더 나은 미래로 연결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