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B 확산과 그린리모델링 재설계를 중심으로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이제 더 이상 통계나 보고서를 통해서만 인식되는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예측이 어려운 집중호우와 가뭄, 그리고 일상 속에서 체감되는 계절 변화는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 건축 환경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분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점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이미 과학적 합의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설정하였다. 문제는 목표의 방향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속도다.
2030년까지 이제 불과 몇 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건축 부문이 담당해야 할 감축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건축물은 운영 단계에서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장수명 자산이며, 한 번의 설계·시공 결정이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축 부문에서의 탄소 감축은 단기간 성과보다는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최근 정부 정책의 중심에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과 공동주택에 대해 ZEB 의무인증을 적용함으로써, 건축물의 에너지 수요 자체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잔여 에너지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이는 건축물의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가장 정공법적인 접근이며, 설계 단계에서의 개입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ZEB 정책의 효과는 필연적으로 ‘신축 건축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국내 건축물의 대부분은 이미 건설이 완료된 기존 건축물이며, 이들 건축물이 차지하는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결국 2030년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신축 ZEB 확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존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그린리모델링 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현장에서 친환경건축 컨설팅을 수행하다 보면,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 개선이 얼마나 복합적인 과제인지 체감하게 된다. 건축물의 외피 성능을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구조적 제약과 비용 부담으로 인해 단열 보강만으로 기대 수준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중·대형 비주거 건축물의 경우, 설비 시스템의 효율과 제어, 운영 전략이 에너지 사용량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리모델링 정책은 일정 시점 이후 민간 부문에서 동력을 잃은 상태다. 공공 건축물 중심의 사업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지만, 민간 건축주에게는 여전히 초기 투자비 부담과 회수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친환경건축 컨설팅 관점에서 볼 때, 향후 그린리모델링 정책은 단순한 단열 개선이나 설비 교체 지원을 넘어, 건축물의 용도·규모·운영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패키지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성능 개선과 함께 유지관리 비용 절감, 실내환경 개선, 자산가치 상승 등 부가적인 편익을 함께 제시하지 않는다면 민간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ZEB 의무화와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강화로 인해 민간 건축주에게 요구되는 초기 투자비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의무 도입은 분명한 감축 수단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센티브와 정책금융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도에 대한 수용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법령에 규정된 용적률 완화, 세제 혜택, 정책자금 지원 등의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연계·활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건축 부문의 탄소중립은 ZEB라는 ‘신축의 해법’과 그린리모델링이라는 ‘기존 건축물의 해법’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현실성을 갖는다. 여기에 설계·시공 단계뿐 아니라 운영 단계까지 아우르는 친환경건축 컨설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성능 평가, 설비 최적화, 운영 전략 수립은 선언적 목표를 실제 감축 성과로 전환하는 연결 고리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검증심사원이자 건축물 에너지 컨설턴트로서, 정부의 중·장기 탄소중립 목표가 제도적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ZEB 확대와 그린리모델링 정책의 균형 있는 추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될 때 2030년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은 비로소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