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용 연료전지 업계가 국회와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제도 개편에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신재생에너지 지원체계와 제로에너지건축(ZEB) 인증 기준 변화로 건물용 연료전지의 시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발전용 연료전지 지원체계는 유지하면서 건물용은 사실상 제도적 혜택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특정 업계의 이해관계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 건물 에너지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과 맞닿아 있다.
현재 건물 부문에서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앞세운 히트펌프와 분산전원 역할을 수행하는 연료전지가 각각 강점을 내세우며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두 기술을 대체재로 볼 것인지, 상호 보완적인 기술로 활용할 것인지가 향후 건물 에너지 정책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ZEB 제도 변화에 흔들리는 건물용 연료전지
건물용 연료전지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신재생에너지법 개정과 수소 관련 제도 개편, ZEB 인증 기준 변화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건물용 연료전지는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열병합 시스템으로 제로에너지건축 인증에서 에너지 성능을 높이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로 활용돼 왔다.
특히 설치 공간 제약이 큰 도심 고층 건물이나 공동주택에서도 적용이 가능해 건물의 에너지자립률 향상에 기여해 왔다.
업계는 관련 법령과 인증 기준 변경이 건물용 연료전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과 국제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을 반영해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흐름은 '전력화'…히트펌프 보급 확대
건물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인 흐름은 화석연료를 전기로 대체하는 '전력화(Electrification)'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해 냉난방과 급탕을 공급하는 방식이 확산되면서 히트펌프가 핵심 설비로 주목받고 있다.
히트펌프는 일반적인 운전 조건에서 투입 전력 1로 3~4 수준의 열을 생산하는 높은 에너지효율(COP)을 갖는다.
초기 설치비도 건물용 연료전지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ZEB 의무화가 확대되는 공동주택과 상업용 건물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히트펌프 업계는 높은 에너지 효율과 경제성을 고려하면 건물 부문의 전력화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이며, 정책 역시 특정 설비보다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별 접근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유럽은 전력화를 중심으로 히트펌프 보급을 적극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도 지역별 여건에 따라 전기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히트펌프와 가정용 연료전지인 '에네팜(ENE-FARM)'을 병행 보급하며 다양한 건물 에너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효율의 히트펌프 VS 안정성의 연료전지
건설사와 건축주 입장에서 두 기술은 서로 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효율과 경제성이다. 외기의 열을 활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난방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사용량이 적고 설치비 부담도 비교적 낮다.
최근에는 저온 환경에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외기온도가 낮아질수록 난방효율이 감소하는 특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 건물용 연료전지는 도시가스 등 연료 공급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날씨와 관계없이 24시간 전기와 온수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
태양광처럼 넓은 설치면적이 필요하지 않아 도심 건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건물의 외부 전력 의존도를 낮추는 분산전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높은 초기 설치비와 연료비 부담은 연료전지 확대의 걸림돌로 꼽힌다. 최근 도시가스 요금 상승과 운영비 증가도 시장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쟁점은 '설비'보다 1차 에너지 평가체계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의 본질이 히트펌프와 연료전지의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ZEB 인증에 적용되는 1차 에너지 평가체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제로에너지건축 인증은 특정 설비를 사용하는지 여부보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1차 에너지 소비를 줄였는지를 평가한다.
전기와 도시가스 등 에너지원별로 서로 다른 1차 에너지 환산계수가 적용되기 때문에 기준이 바뀌면 동일한 건물이라도 인증 결과와 에너지 성능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특정 설비를 일률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평가하기보다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와 계통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ZEB 제도는 개별 기술을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라 건물 전체의 에너지 성능을 평가하는 제도인 만큼 기술 간 경쟁을 통해 효율성이 검증돼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해법은 경쟁보다 '하이브리드'
히트펌프 중심의 전력화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겨울철 혹한기에 히트펌프 사용이 동시에 증가할 경우 최대전력 수요가 높아져 전력망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대로 연료전지는 안정적인 분산전원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경제성과 초기 투자비 부담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두 기술을 대립적으로 보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과 유럽 일부에서는 건물의 기본 전력과 온수는 연료전지가 공급하고, 히트펌프는 계통전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해 난방 효율을 높이는 방식의 실증과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ZEB와 신재생에너지 정책 역시 특정 설비를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 건물의 에너지 절감 성능과 계통 안정성, 탄소감축 효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물 에너지 시장의 경쟁은 이제 특정 기술의 우위를 가리는 단계를 넘어 어떤 기술을 배제할 것인가보다 각 기술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해 탄소 감축과 전력망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ZEB 제도를 둘러싼 이번 논란 역시 개별 기술의 존폐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에 적합한 건물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 : 수소신문(https://www.hydrogennews.co.kr)
URL : https://www.hydrog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4










